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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역사-홍국영 몰락과 죽음

만수르재윤 2023. 6. 2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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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은 홍국영의 어린 시절과 정조의 최측근

즉 오른 날개로 불리기 까지의 과정을 적었고

이번 글은 그의 집권기 활동과 몰락과 죽음에  관하여

포스팅을 해 보겠습니다

 

홍국영의 은퇴와 유배

홍국영은 1776년 3월 정조가 즉위하고 3일 만에

전격적으로 승정원 동부승지(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

에 발탁되었다. 그리고 7월에는 승정원 최고직인 

도승지(지금의 대통령비서실장 격)로 승진된다.

이후 홍국영은 정계에서 물러날 때까지 거의 줄곧

도승지직을 맡았다(원빈 사후 약 2개월 동안 물러난

적이 있었음) "지신사"는 이 당시의 도승지의 별칭인데

이는 곧 홍국영을 가리키는 대명사처럼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 문관으로는 춘추관 수찬관, 경연 참찬관

예문관 직제학, 규장각 직제학, 홍문관 제학,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군문의 장임으로는 정조 즉위년

11월 수어사에 임명되었고, 잠시 총융사를 거쳐 1777년

5월에는 금위대장에 임명이 되었으며 이후 훈련대장과

대개 금위대장을 돌아가며 맡았다.(그러나 홍국영은

훈척 만이 맡을 수  있는 호위대장에는 임명된 적이

없다.)  정조 1년 (1777년 7월), 홍계능, 홍상간의 

궁궐자객침투 사건이 일어났을 때 호위청의 무사가

이 사건에 연루자로 포함되어 있었던 이유로 호위청을

축소하였는데 대신 숙위소(조선시대 국왕의 호위 부대

가운데 하나. 숙위영 이라고도 한다)를 창설하고 

홍국영을 그 대장에 임명하였다. 정조는 숙위대장 

홍국영에게 특별히 대장패와 전령패를 차게 하며

안으로는 부장, 위장, 금군과 도감의 군병, 각문의 수문장

국별장과 밖으로 궁궐 담장 바깥에 삼군영의 입직하는 

순라까지 매일 숙위대장 홍국영에게 보고토록 하였다.

이러한 보직들은 대개 겸직이었으며 홍국영의 대표적인

보직은 도승지와 훈련대장, 숙위대장, 약원부제조였다.

잡다한 겸직으로 인한 격무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록도

종종 보인다. 정조 초기의 가장 중요한 사업이라면

규장각 설치가 있다. 홍국영은 정조의 최측신으로써

규장각과 관련이 깊다. 홍국영은 제일 처음으로 규장각

직제학에 임명된 관료였다. 그러나 홍국영 축출 후 규장각

내각일기에서 홍국영에 관한 기록을 삭제하여 새로

작성하게 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 그가 규장각에서 실제로

이행했던 사업에 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홍국영의 몰락 이유

홍국영의 누이 원빈 홍 씨(정조의 첫 번째 간택 후궁)가 

1778년 정조의 후궁이 된다. 이때 원빈 홍 씨의 지위는

유례없는 것으로 이 모든 이례적인 처사는 모두 

홍국영의 세도로 인해 일어난 일이란 식으로 설명되게 

된다. 혜경궁 홍 씨는 한중록에서 "홍국영이 자교

(후궁 간택령)를 내리게 했다"라고 쓰고 있고

이어 원빈의 입궁에 대해 자신은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홍국영이 세도를 탐내어 제 누이를 들여보낸 것으로

기록했다. 그런데 정조가 원빈 사후 작성한 원빈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글에서는 혜경궁 자신의 진술과는 반대로

혜경궁 홍 씨가 원빈에 대해 각별한 정의(精誼)를 

나타냈다고 한다. 홍국영 일가의 인물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는 고전소설 <숙창궁입궐일기>는 원빈의

입궐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혜경궁은 효의왕후 쪽인 

인상을 주며 <순조실록 혜경궁 행장>에서 혜경궁은

원빈에 대한 각별한 정의를 지녔던 혐의가 있으나

사실이 아니라 강조한 대목이 있다. 원빈 사망 당일

정조는 자신의 서제 은언군 아들 완풍군(훗날 철종의

백부)을 원빈의 수원관으로 삼았다. 훗날 홍국영이

완풍군을 "내 조카"라고 부르며 그를 통해 대계를 

저지하려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기록에

일관성이 없어 완전히 신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완풍군은 홍국영의 몰락 후 왕실 세력의 견제를 받았으며

정조 10년(1786년)에 죽는다

 

 

홍국영은 1779년 음력 9월 26일 자신이 맡고 있던 모든

조정의 실직(實職)에서 물러난다는 뜻을 담은 은퇴 상소를

정조에게 올렸으며 당일 정조는 이를 수락한다.

그리고 정조는 32세에 불과한 홍국영에게 봉조하(조선시대

전직 고위관리를 예우하기 위해 품계에 따라 일정한 

녹봉을 주도록 만든 벼슬로서 일종의 명예직)

직함을 내려준다. 일찍이 백발의 봉조하는 있어도

흙발의 봉조하는 없었는데, 이제 있게  되었다고 하여

그는 "흑두봉조하"라고 불리게 된다. <정종대왕행진>과

<한중록>등 사후적인 기록에서는 공통적으로 홍국영이

자진 사퇴의 형식으로 물러난 것 자체가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어 이것이 정설로 통하나, 사퇴시킨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

정조는 홍국영을 퇴진시키고 그의 백부 홍낙순을 정승에

임명했고 숙위소를 혁파시켰다.

이에 따라서 한동안 홍국영의 세력은 조정에 계속

건재했으며 그 자신도 계속 궁중에 출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2월에는 홍국영의 당여들이 서명응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다가 반대로 조정에서 축출당하고 만다.

1780년 1월에는 홍낙순이 파직과 문외출송되었다.

다음 달 26일 김종수의 탄핵상소가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그는 방출 처분을 받았고 김종수의 탄핵 상소를

시작으로 홍국영에 관한 탄핵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한중록>은 이 부분에 대해 김종수의

상소 역시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1780년 2월 강원도 횡성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음에는 강릉으로 유배되었던 그는 결국 이듬해인

1781년 4월 5일에 홍국영은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홍국영의 몰락이유는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각종 설만 무성할 뿐이지

김종수의 상소가 탄핵의 포문을 연 것인데 이 

상소에 언급된 공식적인 탄핵 사유는 "후궁 간택을

막았다"라는 것이다. 또 완풍군을 정조의 양자로 들여

동궁으로 삼으려 했다는 가동궁 사 건설도 몇몇 군데에서

언급되고 있다. 정조 7년 문양해 반란사건 당시 "왕비의

목숨을 위협했다"라는 기록도 있다.

<정종대왕묘지문>에는 홍국영이 은전군 이찬(정조의

이복동생)을 죽게 해서 몰락했다고 정조가 원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속설 중에는 홍국영이 효의왕후 김 씨의

음식에 독약을 넣었던 것이 발각되었다거나

완풍군을 양자로 삼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19~20세기에나 등장한 

야사로 짐작이 된다.

 

홍국영의 사후

1977년 발간된 <전국문화재총람>에는 

<<강릉 전 홍국영묘>>라는 제목으로 홍국영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묘소가 설명되어 있고,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는

홍국영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묘소가 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따르면 크기는 약 1미터 정도, 넓이는 약 50평

정도로 추정했으며 1972년 후손들이 발견하였으나

아무런 유물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강릉종합경기장

뒤편 교동 수리골이라고 하는 마을이라고 한다.

수리골은 부락명인데 강릉종합경기장에서 북쪽방향

경포호 방향으로 가는 길 주변이다.

이 지역은 1985년 10월 강릉 종합 운동장으로 

개발되었으며 지금은 홍국영의 묘소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묘소 인근에는 홍국영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가옥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뒷받침만 한 명확한

사료는 아직 없다.

강릉시 노암동 300번지에는 홍국영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김윤기 가옥이 있다. 이 가옥은 강희 53년

갑오(1714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가옥에서 홍국영이 실제 거주했는지, 얼마나 

거주했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김윤기 가옥은

1985년 1월 17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8호로

지정되었으며 홍국영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백일홍과

소나무가 전한다.

 

이상으로 정조 오른 날개로 파란만장한 짧은 삶을

살다 간 홍국영에 대하여 글을 써 보았습니다.

많은 공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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